고식화타오금희의 < 고식 >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예부터 전해진 온전한 형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화타오금희 중 가장 완정한 전통식 투로(125식)인 대만의 고식화타오금희를 한국에 소개한 것은 도인법 연구회가 최초입니다. 고식화타오금희를 소개하기 이전에 국내에 소개된 오금희는 간략하게 정리된 간화식(簡化式) 오금희가 대다수 였습니다. 고식화타오금희 초기 전승자 중 1인의 필기 노트
두 번째는 도인법의 핵심인 운기법의 비결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의미입니다.
삼합작용으로 행해지는 운기법은 도인체조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작 상의
삼합작용의 유무야 말로 도인체조가 전통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핵심사항입니다.
고식화타오금희에서는 매 동작마다 삼합작용을 통한 운기의 법이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각
동작의 효과와 작용이 생기는 인체의 부위가 명확하고 세세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삼합작용을
이해한다면 간단한 동작들로도 큰 효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고식화타오금희 운기법 비결의 설명
도인법 연구회에서는 현대사회의 실정에 맞추어 고식화타오금희의 동작 중
일부를 선별해서 지도하거나, 복잡한 동작을 단순화하여 지도하는 경우가
있지만 반드시 삼합작용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이로써 화타오금희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고식의 방식과 현대의 실정에 적합한 방식 모두를 아우르며
체용(體用)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오금희(五禽戱)는 여러 종류가 있으나 가장 체계적이고 또한 화타의 원의(原意)、
고의(古意)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것으로는 대만(臺灣)에서 장경영(張鏡影) 노사에 의해 전해진
오금희(五禽戱)를 꼽을 수 있습니다.
장경영(張鏡影) 노사가 항일전쟁에 참전 시 소속 부대의 부대장이 일본 공군기의 기총소사(機銃掃射)에 다리에 심한 총상을 입고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백방으로 다른 치료방법을 찾던 중 사천성(四川省) 청성산(靑城山)의 도사(道士)를 초빙하여 49일 동안 밀실에서 두문불출하고 소위 “비방(秘方)”에 의한 치료를 받고 거짓말처럼 완쾌된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옆에서 이를 신기하게 여긴 장경영(張鏡影) 노사는 도사에게 간청하여 고식화타오금희(古式華佗五禽戱)를 전수받고 꾸준히 수련하였습니다. 이것이 후일 대만(臺灣)에 고식화타오금희 (古式華佗五禽戱)가 전해지게 된 인연입니다. 화타오금희 대사 이청한(가운데) 한국 방문
장경영(張鏡影) 노사는 1949년 대만으로 건너오게 되었으며, 1956년에 처음으로
고식화타오금희(古式華佗五禽戱)를 전수하였으나 극소수만이 고식(古式)의 전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1956년, 대만의 입법원(立法院) 예당(禮堂)에서 처음
화타오금희(華佗五禽戱)를 전수하였을 때, 시작한 사람은 80여명이 넘었지만
남은 사람은 오직 두 사람으로 이후 60년대에도 장경영(張鏡影) 노사에게
지속적으로 고식화타오금희를 지도받으며 교류하였습니다. 이 두 명의 전승자
가운데 1인이 고식화타오금희(古式華佗五禽戱)의 맥을 잇고 있으며 한국에도 바로
이 고식(古式)이 도인법 연구회를 통하여 전해졌습니다.
장경영(張鏡影) 노사는 1980년 타계할 때가지 오금희를 지도했지만 배운 사람의
숫자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형식으로 변질되어
전승되고 있기도 합니다. 한 자리에서 배운 사람이라도 각기 공부가 달라짐은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이며, 이는 오금희(五禽戱)를 포함한 모든 수련에서도 많이
나타납니다. 또한 장경영(張鏡影) 노사는 가르치는 사람의 나이, 신체 능력,
공부의 깊이 등 수준에 따라 다르게 지도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후 보급된 오금희 가운데에는 장경영(張鏡影) 노사가 전한 고식화타오금희(古式華佗五禽戱)의
변동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본래 200여 개의 동작을 3분의 1이상 줄이거나, 좌우(左右)의 반복 중 한쪽만 남긴다거나,
각 동작의 복잡한 부분을 간략하게 바꾸거나, 호흡(呼吸) 토납(吐納) 작용과 도기(導氣)에 관한 중요한 부분 등을
생략한 간화식 형태가 생겨났습니다. 이는 오금희의 보급에 일부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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